블록체인 기술로 세상의 문제를 풀고 싶은 빌더
호텔조리과에서 블록체인 개발자가 됐다. 모르면 부딪히며 익혔고, 지금도 그렇게 성장하는 중이다. 그가 일관되게 바라보는 건 단 하나, 블록체인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고 싶다는 것.
결국 살아남는 건 끝까지 간 사람이에요.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꾸준히 끝까지 빌딩하면 결국엔 뭐라도 만들어내요. 반짝임은 자주 봤지만, 그게 시장에 안착하는 이유였던 적은 거의 없어요. 안착시키는 건 거의 항상 지속력이었어요.
2017년 논스 5번 멤버로 시작해 지금까지 긴 시간을 이 씬에 계셨습니다. 처음 기대했던 Web3의 풍경과 2026년 현재 체감하시는 현실 사이, 얼마나 큰 간극이 있나요?
저는 처음에 웹3에 들어와서 블록체인이 새로운 커뮤니티의 기준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웹3(혹은 크립토)는 심하게는 투기의 온상, 조금 나은 정도로는 대체 자산, 혹은 금융 기술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 같네요.
기술의 한계보다 효용의 한계가 더 컸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크립토에 들어오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른 수익 실현이었고, 산업도 그걸 조장하는 방향으로 자라왔어요..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랜덤 채팅, 포르노, 중고 거래 사기가 만연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던 거라고 봐요.
최근에는 급진적 수익에 대한 기대는 많이 빠졌고, 새로운 기회의를 좇는 사람들은 대부분 AI로 넘어갔어요. 스테이블 코인, 결제 시스템, 전통 금융의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비로소 사용할만한 서비스들이 조금씩 나오는 단계라고 봐요. 제가 바란 것과는 간극은 아직 있지만 한 단계식 사용성을 입증해나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 Web3 씬에서 "이건 너무 과하게 포장돼 있다" 싶은 부분과, 반대로 "사람들이 아직 이 가치를 몰라준다" 싶은 부분을 하나씩 꼽아주신다면요?
과대포장된 것 — 블록체인이 환상적인 만능 해결책이라는 기대요. 사실 블록체인 자체는 그냥 데이터베이스예요. 단순하고, 어떤 면에서는 멍청해요. 기존 시스템보다 속도, 기능, 편의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고요. AI를 비롯한 다른 디지털 환경의 성장과 함께 가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기술이에요.
저평가된 것 — 대규모 인센티브 분배 시스템으로서의 가치예요. 인간 사회, 그리고 앞으로는 인간과 공존하는 에이전트 사회의 핵심 구동 원리는 결국 인센티브라고 생각해요. 가장 단순한 형태가 월급 같은 돈이지만, 더 본질적인 건 가치의 합의와 인정이거든요. 범사회적 규모로 이걸 처리하는 데 있어서 블록체인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에요. 지금은 토큰화와 DAO의 실패로 비관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미래 사회는 결국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재화 분배 위에서 굴러갈 거라고 확신해요.
Web3를 전혀 모르는 지인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루디움 운영하시면서 실제로 써먹으시는 방식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그냥 "블록체인으로 결제하는 인터넷" 정도로 시작해요. 거기서 블록체인이 뭐냐고 다시 물으면, "디지털 기록 — 특히 토큰 같은 재화 — 을 적어두는 장부"라고 풀어요.
비유는 이렇게 써요. 우리가 쓰는 지폐에도 일련번호가 있고, 카카오뱅크에서 송금하면 어딘가에 기록이 남잖아요. Web3는 그 장부가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환경이고, 거기에 우리의 행위가 쌓이는 거라고. 결국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내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투명하게 기록된다"는 부분이더라고요.
이 설명법은 사실 논스 초창기에 게이트키퍼로 신입을 맞으면서 다듬은 거예요. 그때 가장 크게 배운 게 "내가 이해한 걸 상대 언어로 옮기지 못하면, 그건 내가 이해한 게 아니다"라는 거였어요.
Web3가 진짜로 대중화된 날, 우리 일상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기술이 보이지 않는 상태일까요, 아니면 모두가 지갑을 쓰는 상태일까요?
모두가 지갑을 쓰지만, 동시에 그걸 알지도 못하는 상태일 거예요.
생각보다 가까운 비유가 소셜 로그인이에요. 구글 · 네이버 · 카카오 로그인이 도입된 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닌데, 그 전에는 모든 웹사이트마다 따로 가입해야 했잖아요. 지금은 이미 구글 로그인만 해도 백엔드에서 지갑이 생성되는 상황이에요.
여기서 한 단계만 더 가면, FaceID나 지문 같은 생체 인증이 온체인 계정과 연동되고, 온/오프램프 — 가령 현금 스왑 같은 — 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그 시점이 되면 디지털 세상에서 Web3를 쓰는지 안 쓰는지의 경계는 사용자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을 거예요. 기술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잘 작동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죠.
크립토 윈터를 여러 번 겪으셨는데도 여전히 루디움과 포뮬라랩스를 빌딩하고 계신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미국과 중국이 싸운다면 결국 이기는 건 크립토라고 생각해요. 디지털로의 대전환 안에서 크립토는 피할 수 없는 맥락이자 숙명이거든요.
그렇다면 그 변화의 최전선에 남아 있고 싶었어요. 어차피 올 세상이라면, 그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이로운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데 한 자리 차지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윈터는 가격의 계절일 뿐, 빌더의 계절은 따로 있다고 봐요.
이제 막 Web3에 뛰어들려는 사람에게 꼭 쥐여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꼭 Web3가 아니어도 통용되는 답인데, 성실하고 겸손할 것. 이것보다 강력한 게 거의 없어요.
Web3에 한정해서 한 가지 더 얹자면, 이 산업은 금융과 붙어 있어서 다른 어떤 곳보다 광기와 환희가 자주 오가요. 거기서 부화뇌동하지 않는 초연함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해요. 결국 끝까지 남는 사람은 흥분도 절망도 잘 견디는 사람이에요.
지금의 통찰을 그대로 가진 채 논스 초창기로 돌아간다면, 가장 다르게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조금 더 과감하게, 조금 더 많이 시도해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이제까지 엇나간 선택이 적었던 덕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도 알아요. 차라리 지금이 진짜로 뭔가를 실현할 때가 온 거 아닐까 싶고요. 그래서 결국엔, 그냥 이대로가 제일 좋았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요.
기존 커뮤니티나 채용 플랫폼이 많은데도, 굳이 루디움(Ludium)을 통해 'BAS'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늘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빌더 커뮤니티를 계속 운영하게 됐어요.
요즘은 다른 업무 비중이 커져서 빌더 쪽에 온전히 집중하지는 못하지만,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는 세상이 오려면 새로운 형태의 기여와 보상 체계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채용 플랫폼은 이력서 기반이고, 기존 커뮤니티는 활동 기록이 휘발돼요. 빌더가 어디서 무엇을 만들었는지,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검증 가능한 형태로 누적되지 않으면 인센티브 정렬이 안 됩니다. 그걸 풀어내려는 시스템이 BAS이고, 그래서 루디움이라는 빌더 커뮤니티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어요.
2019년, "투자 말고는 할 게 없다"는 회의감에 잠시 살롱에드할로 가셨던 적이 있죠. 그때의 경험이 지금 루디움을 설계하는 데 어떤 거름이 됐나요?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 혹은 사회의 출현이에요. 거기서 블록체인과 Web3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가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평소에 놓치고 있었던 게 보이거든요. 살롱에드할에서 1년 가까이 100개 가까운 비크립토 커뮤니티를 굴리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본질이 뭔가"를 다시 들여다봤어요. 그 시간이 제가 처음 블록체인에 들어왔던 이유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루디움이 토큰 우선이 아니라 기여 우선으로 설계된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어요.
루디움이 기여 중심의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에어드랍 같은 인센티브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과 보상만 보고 온 사람,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구분이 되던가요?
사실 그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인센티브의 유형이 다양할 뿐이에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어떤 이상향이 가장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금전, 또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인정이 가장 중요해요. 토큰이 단순한 돈을 넘어 가치를 담는 재화라면, 사실상 "에어드랍 때문에 오지 않은 사람"이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아요. 인센티브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모든 니즈를 포함하니까요.
그래서 운영자로서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급하는 보상이 — 금전이든 아니든 — 실제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가예요. 그리고 솔직히 99%의 경우엔 돈이 가장 심플하고 효과적이에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설계가 시작돼요.
NEAR, BNB 같은 글로벌 재단들의 한국 진출을 돕고 계신데, 그들이 한국 시장에서 흔히 하는 착각은 뭔가요? 아곤님이 꼭 짚어주는 한국 빌더들만의 진짜 강점은요?
가장 흔한 착각은 "노력 없이 큰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예요. 특히 빌더는 투자자와 달리 리턴까지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요. 앱이 출시되고 사용자가 유입되기까지 들어가는 공수가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마케팅 예산 한 번에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면 거의 실패해요.
한국 빌더의 진짜 강점은,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최적의 효율을 찾는 능력이에요. 룰만 명확하면 그 안에서 가장 빠르고 정교하게 결과를 만들어요. 그래서 제가 재단 측에 늘 강조하는 게, 프레임을 어떻게 짰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셔야 한다는 거예요. 한국 빌더는 백지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보다는, 잘 정의된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푸는 방식에 강점이 있어요.
세인트존스에서 고전을 읽던 시간들이, 0과 1로 이루어진 Web3 세계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기술적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꺼내드는 철학적 문장이 있다면요?
가장 큰 혜택은 누군가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 거예요. Web3는 FOMO가 너무 강한 산업이라서,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 쉬운데 그 부분을 많이 줄여줬어요. 텍스트를 직접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 것도 큰 자산이고요.
세인트존스에서 읽은 건 아니지만, 제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문장은 공자의 「논어」 첫 구절이에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게 결국 빌더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배움과 익힘이 즐거움이 되는 상태. 그 상태를 유지하는 한 윈터든 서머든 큰 차이가 없어요.
50번 넘는 해커톤을 기획하며 수많은 빌더를 보셨을 텐데,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보다 결국 제품을 시장에 안착시킨 사람들만이 가진 공통점이 있던가요?
결국 살아남는 건 끝까지 간 사람이에요.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꾸준히 끝까지 빌딩하면 결국엔 뭐라도 만들어내요. 반짝임은 자주 봤지만, 그게 시장에 안착하는 이유였던 적은 거의 없어요. 안착시키는 건 거의 항상 지속력이었어요.
다음 블록을 생성할 분으로 추천하고 싶은 'Web3 People'은 누구인가요? 그분께 던질 질문 하나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한재선 님을 추천하고 싶어요.
질문은 한 가지예요 — "최근 운영 중이신 다오랩(DAOLab)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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